2010-03-31

요즘 베토벤 후기작품을 다시 듣고 있습니다.

얼마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대한 글을 쓴적이 있었습니다. 스스로 쓴 글을 자신이 읽고는 갑자기 이끌려서 다시 베토벤 후기 피아노소나타와 현악사중주를 듣고 있습니다. 자신이 던진 미끼에 스스로 걸려드는 것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바보들의 특성이긴 합니다.

역시나 시작은 고교시절입니다. 고교 생활은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밤늦게 귀가하는 피로한 생활의 연속이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시간이 너무도 넘쳐서 여유로운 시간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공부를 계속해서 요구하지만 사실 공부는 얼마 안하니까요. 이때 부모님께서 휴대용CDP를 구입해 주셔서 이것저것 많은 작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상당히 재미있는 작품을 많이 접했는데 베토벤의 후기작품도 이중 하나입니다.

베토벤의 중기작품 이외에 후기곡도 접하자는 생각에 시디 몇장을 구입했습니다. 그러나 처음 음반을 구입했을 때는 "내 돈!"을 몇번 연발했는지 모릅니다. 뭔가 4차원스럽고 아스트랄한 느낌 때문입니다. 함머클러이버나 대푸가, 현악사중주 제14번을 듣고는 베토벤 이 사람 말년에 정신이 나갔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으면 저멀리 던져 놓으려는 습성이 있는 모양입니다. 음악 뿐 아니라 다른 영역 또한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내던지고는 집어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여러가지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합리화의 한가지 방법은 바로 무차별적인 비하인데 자신의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분보다는 상대방에 대한 비하를 먼저 시도합니다. 정확히 어떤 의도로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 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바로 베토벤의 후기작품입니다. 어느날 현악사중주 제15번의 마지막의 악장을 듣고 있었는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뭔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공허한 모습이 가슴속을 파고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하나하나 차분히 들어보니 하나하나가 모두 대표작이라고 불러도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작품들을 접하지 못했다면 정말 많은 즐거움을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많은 것과 접하며 많은 것들을 인식의 범위 바깥이라고 버리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 너머의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디엔가 멋진 것이 숨어 있고 이를 발견하는 일은 큰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이 즐거움을 위해서는 열린 자세로 많은 것을 접해야 하는데, 저 자신의 한계로 쉽지 않다는 것을 항상 느끼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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