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1

봄의 제전 두번째

봄의 제전은 https://www.youtube.com/watch?v=NQQR-GU14sQ 이런 작품입니다.

고등학교 때 레포트를 작성하려고 봄의 제전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음악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대충 인터넷의 글을 베껴서 레포트를 작성하고 구입한 음반을 구석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레포트에 욕을 쓸 수는 없었으니까요. 입시로 시달리던 시절에 이 음악을 다시 들으니 세상에 색이 다시 칠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기괴한 박자는 오히려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고요. 아마도 스트레스로 한계에 몰렸던 정신 덕분(?)이었을 듯 합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하는 음악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저 음악이 처음 초연됐을 때 반응( https://namu.wiki/w/%EB%B4%84%EC%9D%98%20%EC%A0%9C%EC%A0%84#s-1.2 )이 격렬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애써 숨기고 있었던 바닥의 감정을 일깨우기 때문일 겁니다. 충분히 문명화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불쾌하기 그지없는 음악을 들으면서 불쾌한 쾌감을 느끼게 됩니다.

'봄의 제전'에서 희생되는 여자는 공동체의 질서를 위해서 희생되는 것이고 결국 공동체는 유지됩니다. 당연히 문명화된 사회에서 저런 '야만적인' 의식은 있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많은 종교에서 넘쳐나는 '신의 벌' 같이 완전히 떼어낼 수 없는 내면의 일부분인 점을 부정하기도 힘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의식의 장소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법정입니다. 앞에는 의식을 진행하는 성직자인 판사가 의례복인 법복을 입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변호사와 검사는 성직자가 계시를 내려주기를 간청합니다. 뒤에는 의식을 구경하는 군중이 있고요. 법정의 구조( https://www.google.com/search?q=%EB%B2%95%EC%A0%95&udm=2 )가 교회( https://www.google.com/search?q=%EA%B5%90%ED%9A%8C+%EB%82%B4%EB%B6%80&udm=2 )와 유사한 점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욕망에서 벗어나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욕망이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도 이상하고요.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제도화함으로써 거대한 규모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를 법정에 세워서 처벌(희생)하는 일을 잘못됐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관련이 없는 사람이나 대신할 양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죠.

봄의 제전을 보면 희생자를 사람 한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악한 선택입니다. 의식을 진행하지 않는다면 부족 전체가 신의 벌을 받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질서가 잘못된 것이 아닌한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계속해서 확인해고 싶어합니다. 의식이 방해를 받아서 군중이나 신이 분노했다면 의식을 통해서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겠죠.

타락한 성직자들과 의식을 다시 신성하게 바꿔준다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질서는 혼란스러워졌고 의식은 조롱 받았습니다. 의식이 방해 받을 때마다 희생물에 대한 집착은 심해집니다. 사람들이 불 위에 올리고 싶어하는 희생물은 점점 늘어납니다. 영리한 사람들이 생각이 있으니 저러겠지만 선악을 떠나서 굳이 스스로와 주변 모두를 내주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